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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308] 國弓과 한우

작성일2021-08-02
작성자전국한우협회
올림픽에 나갈 때마다 메달을 따는 종목이 양궁이다. 한국 사람은 활을 잘 쏘는 유전자가 있는 것일까.

있는 것 같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도 활을 잘 쏘았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활을 잘 쏘았다. 칼을 잘 쓰거나 창을 잘 썼다는 이야기는 안 나오고 활을 잘 쏘았다는 이야기만 전해진다는 것은 이 창업주들이 특별히 활을 잘 쏴서 정권을 잡았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이성계가 전국구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황산대첩에서 왜구의 소년 명장 ‘아지발도’를 다름 아닌 화살로 잡은 실력 때문이었다. ‘東夷’의 이(夷) 자도 큰(大) 활(弓)이라는 뜻 아닌가.

한·중·일의 주특기를 비교할 때 중국은 창을 잘 쓰고 일본은 칼을 잘 쓴다면 한국은 예부터 활을 잘 쏘는 민족이었다. 특히 사거리가 일반 활보다 2배나 길고 화살이 짧은 편전(片箭)이라는 활은 조선 활 중에서 명품 활이었다. 관통력이 강해서 어지간한 갑옷을 뚫는 데다가, 화살이 아주 짧으니까 날아오는 화살을 칼로 쳐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조선은 무예 중에서도 유달리 활 쏘는 데 주력하였다. 요즘도 서울 남산을 비롯하여 지방 도시 곳곳에 국궁 연습장이 있다. 다른 전통 무예는 그 전승이 희미해졌지만 국궁만큼은 아직 민간의 품격 있는 취미 활동으로 명맥이 남아있는 것이다.

경북 예천에 가보니까 국궁(國弓, 角弓) 만들었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천에는 김해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700리를 올라가 삼강 나루터라는 터미널이 있었다. 경상도 내륙 물류의 중심지였으므로 소를 사고파는 소장수들의 왕래도 많았다. 삼강에서 예천 읍내로 가는 중간에 우두원(牛頭院)이라고 하는 숙박 시설이 있었다. 영남 일대에서 모인 소장수들이 많이 묵은 여관이었다.

국궁을 만들기 위해서는 황소 뿔과 소 힘줄이 많이 필요했다. 황소 뿔은 활의 사거리를 좌우하는 중요한 재료였고, 소 힘줄이 들어가야만 활채의 탄력을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민어 부레로 만든 어교(魚膠)로 참나무와 산뽕나무에 뿔과 힘줄을 붙였다. 조선의 전략 무기인 활을 대량으로 제작하려면 황소 뿔과 소 힘줄 공급이 충분해야만 하였다. 조선의 황소가 활의 주요 재료였던 것이다. 소 장수의 왕래가 많아서 우두원이 있었던 예천이 국궁으로 유명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우 가죽은 북을 만들고, 피는 선짓국으로 먹고, 다리는 우족탕으로 먹었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가축이었다. 조선 활은 한우에서 나왔다.
 
조용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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